김미숙
작가노트
지속성은 미래를 담보로 하는 현재의 균일한 흐름이다. 순환을 하는 모든 것들은 이러한 지속성을 형과 태에 두지 않고 자신의 에너지에 근원으로 두고 지속성을 유지해 나간다.
시간과 환경에 따라 지속을 유지하기 위한 근원적 에너지의 보전을 위해 유기적 탈바꿈이 이루어진다.
김미숙 작가의 모티브 ‘연 줄기’의 모체인 “연(蓮)” 또는 연꽃, 정확하게는 수련(睡蓮)이라는 다년생 초본식물도 지속을 위한 유기적 형태변화를 한다.
뿌리를 근원으로 꽃과 개화를 지탱하던 줄기는 계절의 변화라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멸하며 지속적 유지를 위해 에너지를 뿌리에 보전하고 다음 개화를 이루고 또 이루는 것이다.
순환이라는 자연의 법칙은 연꽃과 그 줄기에도 변함없이 적용이 된다. 이러한 관계는 달리 말하면 지속가능한 생성의 에너지라 할 수 있다.
겨울 연못위에 처연히 자리한 채 살짝 불어오는 바람에 금방이라도 꺾여 쓰러질 것 같은 가느다랗고 볼품없는 마른 연 줄기는 보는 사람에게 연민과 아릿함을 준다.
그런 연 줄기의 모습과 잔영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해방감을 느꼈던 심상과 그것에 대한 표현 사이에 간극을 끌어안고 좌고우면하던 김미숙 작가의 최근 신작들은 전작들과 달리 넉넉한 활기와 기운이 가득하다.
색의 절제와 단색조의 강화를 통해 차분한 심연의 느낌을 조성하던 전작들의 색감은 거의 사라지고 강한 파스텔 색감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작업들 중 새롭게 등장한 조그마한 소품들이 특색으로 다가온다.
소품이면서도 다 수의 조합을 통해 커다란 사이즈로 변환할 수 있는 일종의 키트 시리즈이다.
각각의 소품들은 각기 다른 느낌과 이야기를 지니면서 이윽고 다른 소품들과의 결합을 통해 연계된 또 하나의 줄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틀의 재형성(Frame Reforming)’을 구현하는 것이다.
기실, 여기에는 작가의 초기 작업들에서 어느 정도 단초를 구할 수 있다.
그것은 이전 전시서문에서 주지한 것으로 작업이 끝난 캔버스의 천을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그 조각들을 다시 새로운 캔버스 위에 콜라주하여
전혀 다른 형상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파편화된 기성의 이미지 조각들이 헤쳐 모여 ‘재집합된 형태’임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이번 소품들이 일련의 조합을 이루거나 각기 독립된 작품으로 위치하는 이면에는 작가의 작업형식에 관한 기존의 지속적 탐색과 시도가 내재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표현방법에 대한 조형적 물음표가 여전히 일련의 선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김미숙 작가의 신작들에 등장하는 통통하게 변신한 연 줄기의 두툼한 모습들은 얼핏 미국의 팝아트 작가 키스 해링(Keith Harring)의 실루엣을 연상하게 한다.
이는 기존의 가늘고 날렵하게 묘사된 연 줄기를 떠나 형체를 간략화하고 외곽선을 강조하면서 일어난 형태적 유사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앙리 마티스 이래 색은 기존 미술과 사회 관념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되는데 원색을 필두로 보색대비, 물감 자체의 색 발현 등을 캔버스 위에 올릴 수 있는 표현의 자유는 이후 팝아트 등에서 더 활발하게 전개된다.
팝아트 작품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키스 해링의 작품들도 평면을 기반으로 원색이 드러나는 화려한 색감이 펼쳐진다.
몬드리안의 원색들과 해링의 인체에서 알 수 있듯이 원색과 강한 색들은 주변 색이나 형상들과의 배치보다는 단순한 외곽선에 의해 더 효과적으로 규정된다.
김미숙의 경우, 획처럼 보이는 선들로 마른 연 줄기의 형상과 존재를 화면에 드러내던 초기 작업들의 방식에서 이제는 연 줄기의 부피를 늘리면서 외곽선으로 강조하거나 아예 연 줄기의 내부도 모두 채워 마무리하고 강조함을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외곽선이 주변과의 분리뿐만 아니라 자체가 내부면적이 된 것이다. 같은 듯 다르게 키스 해링의 인체처럼 연 줄기를 나름 정형화 하는 것이다.
연 줄기의 형태적 특징을 버리고 도상적으로 해석하는 이면에는 작가의 심상에 자리한 생각들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는 화면상의 표현적 한계와 그에 따른 부수적 갈증과 의문이 자리함을 들 수 있다.
어찌 보면 의인화, 혹은 관념화된 연 줄기의 이미지가 실제의 연 줄기에서 느꼈던 김미숙의 감성을 보다 더 절실하게 표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화면위에 펼쳐진 다소 뚱뚱한 연 줄기들은 헐벗고 메마른 기존의 그것들에서 벗어나 이제는 환골탈태한 것처럼 여유롭고 태평한 연 줄기들로 자신들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가늘고 날렵한 연 줄기의 자취가 사라진 자리에는 목이 기다란 동물인 기린이 등장한다. 예로부터 인과 덕을 상징하는 상서로운 동물로 여겨져 온 기린은 도교, 무속신앙과 전래신화 등에 등장하는 신수(神獸)이기도 하다.
오행사상에서는 황룡과 함께 동서남북(사신)의 중앙 위치를 다스리며 사후세계를 수호하는 성스러운 존재이다.
일례로 기린과 관련된 대표적인 우리의 신화를 보면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죽지 않고 기린을 타고 승천하여 다시 돌아오지 않으므로 그의 옥채찍을 대신 묻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김미숙의 작품 속 기린은 성스러운 존재 자체보다는 다른 존재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메신저로서 전체의 지속적 안녕을 의미하는 상징과 같은 인내와 배려의 보편적 존재로 여겨진다.
화면에 가득 찬 통통한 연 줄기들과 그들의 노래를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하얀 기린은 설화속의 세계,
신수와 함께 병치되어 지속적 순환과 희망을 내포하는 방점을 찍고 작가의 심상과 의도를 상징적으로 풀어나가는 시각적 암시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전작들에 없던 설화적 요소가 성큼 등장하는 만큼 전체적인 분위기와 느낌이 전작들과 사뭇 다르며 안정감 있는 밝은 톤의 화사함이 물씬 우러나온다.
이전의 연 줄기들과 그들을 품던 공간, 그리고 여백은 이제는 스토리가 담긴 평면으로 바뀌어 삶과 사랑 그리고 희망 등의 염원을 주재하는 매개체로 자리매김 하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선순환 관계는 인간과 인간 사이뿐만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도 매우 중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잦은 이상기후 현상들과 화석연료에 의한 공해, 플라스틱에 의한 심각한 오염은 인간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안위를 위협하는 상황이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팬데믹까지 겹쳐 지속적 보전과 공존에 관한 의문과 회의를 심각하게 받아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며 이 시대의 예술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함은 자명하다. 김미숙 작가의 연 줄기들도 고려시대의 연꽃들이 아닌 현재의 연꽃들을 위한 줄기이며 받침대이다.
꽃이 화사하게 만개하던 시간들을 뒤로 하고 뿌리에 그 열정을 고이 담아 차가운 겨울설풍 속에서도 봄을 맞이하기 위해 인고의 시간을 감내하는
“연”은 지속과 선순환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염원과 소망은 희망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의지의 발현이다.
그래서 김미숙 작가의 연 줄기들은 고진감래의 열매처럼 통통하게 보상성이 강한 형태로 재탄생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얀 기린과 연 줄기의 이야기는 순리와 순환의 멜로디이며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생명들의 아름다운 서사시이자 사랑을 꿈꾸는 가극이기도 하다.
2021. 10. 임 상 완 (미술평론, 조형예술작가)
작가 이력
한려대학교미술학과 동대학원미술학석사졸
아트나우미술창고
개인전
2021.11,10-16 RELATION_2021展 제9회개인전 (인사동 galleryis)
2020.12.6.-12.26 RELATION展 제8회개인전 (여수 수갤러리)
2019.8.10.-18 RELATION - 선을 그리다展-제7회개인전(평창동아트스페이스퀠리아 )
2018.11.30.-12.6 RELATION展 –제6회개인전 (광양문화예술회관)
2015.01.2.-1.20 DISSOLVE展 - 제5회개인전(전라남도교육청,린갤러리)
2014.09.15-10.10 기억의 편린展- 제4회개인전(전라남도순천교육지원청.청갤러리)
2011.1.14.-1.31 기억,꿈,직관展/순천갤러리 아티스트초대-제3회개인전
2006.12.9-12.6 두번째 그림이야기展-제2회개인전 광양문화예술회관(제1전시실)
2005.12.3.-12.10 첫번째 그림이야기展-제1회개인전 광양문화예술회관(제2전시실)
초대전 및 부스전
2020.2.20.-23 2020 화랑미술제 (윤갤러리-코엑스홀)
2020. 6.18-서울옥션 제로베이스
2020.8 전남대병원 초대전(전남문화재단)
2020.9 광주은행 본점 초대전 (전남문화재단)
2020.2.1.-29 해지면 열리는 미술관 초대전(순천시립도서관)
2019.11.27.-12.01 2019광양아트옥션 G-아트옥션
2012.3.12.-3.31 기억,꿈,직관전-MG갤러리초대전
2011.10.22.-10.30 KPAM대한민국미술제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10.9.11-9.20 한국미술의 빛-ACAF예술의 전당(한가람 미술관)
2008.8.6.-8.17 아시아프(ASYAAF)개인부스전(구,서울역사)
2007.10.26.-11.25 여류작가4인전-대주피오레갤러리 초대전
ARTWORKS
relation_211209 acrylic on canvas 90.9x72.7cm 2021
EXHIB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