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수평

작가노트


예술가는 가장 일반적인 것과 낯설음의 경계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을 자극하고 미적 심상을 고양하는 특질을 지닌다. 

일반적으로는 우리가 어떠한 것의 가치를 논 할 때 사실에 대한 당위성을 기반으로 기준을 정립하기 때문에 사실의 세계에 얽매이게 된다. 

반면에 예술창작이나 창조적 사고에 경도하는 경우, 사실의 세계를 초월하게 된다. 칸트는 가치의 영역은 사실의 영역에 의해 제한되지 않고 사실의 영역을 포괄한다고 하였다. 

상상력은 존재하는 것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구애 없이 가능한 것에 밀접하게 관련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가치의 대상은 현실의 실재에 국한하지 않고 소설속의 등장인물에 감동하거나 유토피아 등의 비현실적 세계에 열망하는 것처럼 순전히 상상적인 것에도 이르기 때문이다.

채수평 작가가 전시 타이틀로 채택한 장자(莊子)의 ‘황당지언(荒唐之言)’에서 유래한 황당무계(荒唐無稽)는 말이나 행동이 헛되고 터무니없음에 믿을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는 말로 하는 그 어떤 것도 사실의 검증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진위(眞僞)가 그 어떤 것의 모든 것을 포괄하여 결정하기 때문에 터무니없음에 대한 불신이 성립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술가의 미적 심상이라는 전제 조건하에 하나의 가정을 내세워 위에 언급한 칸트의 가치판단에 대한 입증을 해 볼 필요가 생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어처구니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어처구니는 맷돌의 손잡이를 이르는 옛말이다. 만약에 어처구니가 없으면 그냥 양손으로 맷돌의 상단을 맞잡아 돌리면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맷돌이 돌아갈 일이 없다. 그러나 바보같이 힘들게 맷돌을 끌어안고 씨름을 하든 어쨌든 맷돌이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있다. 

이 부분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발전과 진화가 자리한다. 화가가 붓으로 맷돌의 어처구니가 빠진 부분에 어처구니 그림을 그려 넣든, 발명가가 멧돌에 모터를 달든 모든 것은 상상력의 가능성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채수평 작가의 최근 작업들은 ‘황당무계’라는 이 번 전시의 타이틀 보다는 ‘회귀’라는 단어가 더 알맞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존의 오브제 작업보다는 회화의 기본에 충실하게 매진하여 작업한 결과들이다. 

멸치를 모티브로 한 기존의 작업들을 회화의 기본 측면에서 재해석한 최근의 작업들은 오브제에서 평면으로의 회귀가 작업의 주된 맥락을 이룬다. 

달리 말해 이전의 플라스틱 재질의 금형제작 오브제들에서 붓에 의한 묘사로 멸치의 표현방식이 바뀌었다. 

그뿐 아니라 마른 멸치만을 소재로 채택하던 것에서 벗어나 핏빛이 비치는 날것의 생멸치, 그리고 쪄낸 후 건조에 들어간 멸치까지 대상의 폭을 확대하였다. 

최근작들에 대한 서술에 앞서 마른 멸치를 소재로 한 지금까지의 작업들에 대해서 간략히 요약해보면, 

하잘것없고 빈약한 멸치의 관념적 실체를 분해하고 재조합하는 마른 멸치의 오브제라는 표현형태의 근간에는 ‘전이(轉移)’와 ‘작가적 제의(祭儀)’가 함의하고 있음을 들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포획 후 찌고 말리는 가공의 과정을 거친, 이미 죽어 생명이 없는 마른 멸치의 틀을 뜨고 그것을 다시 재현, 

혹은 재생함은 대상의 특질뿐만 아니라 의미적 상태를 바꿔 놓는 전이의 개념이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오브제(Objet)의 이면성(裏面性)을 드러내어 

동적 생명체에 대한 질문과 의구심이 복선을 형성하는 제의적 기호로 마른 멸치에 대한 오브제를 제시 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에서 무생명으로 전이라는 일련의 가공 과정을 압축한 것이며 어쩌면 시각적으로는 전혀 다른 엔디 워홀의 캠벨수프 깡통들과 맥이 닿을 수도 있는 것이다.

제작에 있어서 평면과 입체를 오가며 작업하는 방식은 현대의 미술가들에게는 이미 보편적인 방법이다. 

작업의 형식적 진로를 놓고 때로는 모티브에 대한 사상적 고찰보다 더 고민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평면과 입체의 스위칭은 작가의 조형적 특질에 대한 탐색과 시도가 치열함을 의미한다. 

채수평의 경우, 오브제에 의한 일루전의 형성에서 화필에 의한 묘사로 이루어지는 평면의 이미지로 전환을 하는 차에 소재의 상태를 다양화하여 함의의 범위를 넓히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이질적인 혹은 아주 생뚱맞은 소재를 도입하는 등 마른 멸치 이후의 가능성에 대한 탐색과 시도를 다각도로 전개하고 있다.

먼저 마른 멸치에 몰두하던 지금까지의 작업에는 하잘 것 없고 빈약한 멸치에 관한 관념적 실체와 실재성에 대한 물음이 있다. 

거기에는 푸른 공간에 떼를 지어 유영하거나 어딘가로 헤엄쳐가는 듯 군무를 펼치는 멸치들의 역동성과 화려한 색감들 그리고 마른 멸치의 형(形)을 차용한 오브제의 화석(化石)적 동태(動態)가 이루는 

일루전이 화면의 주요 프레임을 형성하는 구조가 주요 맥락을 이루고 있다. 화필에 의한 묘사가 차지하는 부분이 배경이나 일부 특정 부분에서 머물던 전작들의 스타일을 떠나 

온전히 전면을 페인팅으로 구성하는 신작들은 작가의 의도와 개념도 많이 달라졌음을 나타낸다. 

우선 화려하고 역동적이던 색감을 무채색에 가까운 단색조로 조율하면서 주제인 멸치의 형상묘사에 비중을 두어 바다에 유영하던 멸치가 아닌 포획 이후의 멸치가 주는 실재적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주제의 대상으로 마른 멸치에 그치질 않고 포획한 후 

가공 공정에 들어가기 전의 날것 상태의 생멸치나 건조 과정 중에 있는 멸치들과 건조가 끝난 마른 멸치의 더미들을 그린 작업등이 혼재하고 있다. 

이외에 한라산의 백록담과 같은 화산호에 유영하는 멸치들을 그린 삽화적 느낌의 풍경들도 보인다. 전작들이 작가의 상상력에 기반한 이미지들이었다면 대부분의 신작들은 현실에서 발견 할 수 있는 광경들인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현실에 대비하는 작가적 상상력의 장치로 등장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돌멩이이다. 

전작들의 바닷속 모래밭위에 뒹굴던 돌멩이들도 멸치와 함께 포획된 것인지 신작들에서도 여전히 멸치들과 같이하고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에 등장하는 얼굴 위 사과처럼 생경함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돌멩이들은 전작들의 그것과 달리 의도적으로 당혹감을 주고 있는 느낌을 갖게 한다. 달리 말하면 황당무계에 대한 작가의 제스처로 정의할 수도 있다. 

사실, 황당무계보다는 초현실주의적으로 해석하여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는 어떤 의도된 어긋남’이라 할 수 있겠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황당무계는 말이나 행동 등 어떠한 것에 있어서 검증의 부재에 따른 불신이라고 해석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처구니가 있어야 할 곳에 없는 맷돌은 황당무계한 상황에 놓인 것이며 적어도 그에 상응하는 어떤 해결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검증미비로 인하여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지속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예술가는 어처구니가 없을 경우에 어처구니가 있던 멧돌의 그 부위에 어처구니를 그려 넣을 것이다. 하지만 어처구니가 아닌 돌멩이를 그려 놓을 수도 있다. 

그것이 유쾌하든 아니든, 그 경우에는 맷돌의 황당무계한 상황이 고착화 되는 것이다.

작가의 예술가적 상상력에 따르면 돌멩이가 아닌 그 어떤 것도 멸치위에 놓이거나 멸치와 함께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예술가가 눈에 익은 세계와 낮설음의 세계 경계에서 상상력과 함께 미적 감흥을 고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채수평 작가의 다음 멸치들은 어떤 상상의 자락들과 같이 할 것인가 하는 궁금증과 흥미가 이는 것은 현실의 실재에 구애받지 않는 가치판단의 미적 욕구가 작동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2021. 10. 임 상 완 (미술평론, 조형예술작가)

작가 이력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졸 및 동국대영상대학원박사과정수료

한국애니메이션학회 회원 

한국 영상미디어협회 회원

한국CDAK디자인협회 회원

광양미술협회지부장

한국미술협회 서양화이사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경기미술대전 심사위원

나혜석미술대전 심사위원

전남도전 심사위원 

전국섬심강미술대전 운영.대회장역임(2017-19년)

출강


세종대학 미술대학강사 

호서대학교 미술대학강사

예원예술대학교 만화.게임영상학부 전임겸임교수,

국립전남대학교, 대학원 강사역임

개인전


제17제 IS갤러리(인사동,목포갓바위미술관),16회 IS갤러리(인사동), 제15회 인사아트센타-특별관(인사동). 

제14회 아트스페이스Qualia(평창동), 화인갤러리(여수) 제13회 인사아트스페이스(인사동),2017,광양문화예술회관(초대전).

한.중교류전(선전시) 제12회 I 갤러리(인사동)2015.MG새마을금고 갤러리, 제11회 I 갤러리(인사동)2014, 제10회 EW갤러리(반포)2014, 

제9회 인사아트센타2012 ,제8회 광양문화예술회관2012 .제7회 광양MG 초대전 2011, 제6회 광주자미갤러리/광양시청갤러리2011. 

제5회 서울애니메이션센타 2003, 제4회 광주옵스갤러리2002 ,제3회 서울애니메이션센타 2001, 제2회 광주현대백화점2001, 제1회 진남문예회관2000

기획전 및 해외아트페어


미국 마이얘미, 싱가폴, 홍콩, 중국 및 국제아트페어(8회)

부산BAMA, 국내아트페어, 기획초대전8회 단체전280회 

수상


동서미술상(2020), 한국예총공로상 및 전남공로장(서양화부분-도지사)

작품소장


SK본사, 호서대학교, 전남대박물관, Tirol Resort, 미술과미평(주),승진건설(주), 순천대학교, 여수골드비치리조트, Gaga갤러리,광양시, 순천시, 나래식품(주), EDIYA매장,전남도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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